The Enigma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 (1915~1997)의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그의 연주를 특징적으로 다르게 들을 기회는 지금까지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의 일생을 인터뷰와 자료화면으로 만든 영화로 접하게 되었고, 그 다음으로는 그에 대한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음악을 들었다. 영화의 인트로에 나오는 슈베르트 소나타 21번 2악장은 슬픔을 억누르는 듯한 표현이, 숨이 편하게 쉬어지지 않게 한다…

그의 음악은 우선 물흐르듯 자연스럽다. 작위적인 면이 없다. 흔히 그를 가리켜 작곡자의 음악을 훌륭하게 해석한다고 일컫는데, 그 스스로는 ‘악보를 외울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연습을 더 하겠다’고 하는 등 어찌보면 악보에 있는대로 그의 몸을 빌려서 음으로 옮겨내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자신을 투명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듯 하다. 그래서 그가 바하도 훌륭하게 연주하면서 바그너나 프로코피예프, 리스트 등 성격이 완전히 다른 작품들을 소화해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특기할 점은 독학으로 인한, 나쁜 습관이 없는 것이다. 음악을 공부한다고 하면서 음악학교에 가서 스승에게나 동료에게 좋은 점도 배우지만, 안 배워도 될 것들도 배우는 것도 사실이다. 가령 ‘겉멋’같은 거… 그의 연주엔 ‘겉멋’이 없다. 오히려 ‘담백한 연주’가 더 파워플하다는 실례를 보여준다.

그의 연습 철칙은 ‘하루에 세 시간씩 (일곱 시간이 아닌!) 연습’ 하기와 ‘한 페이지가 완전히 연마가 될 때까지 넘어가지 않기’라고 한다.

리히터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러시아 피아니스트로, 1차대전이 일어난 직후에 태어난 독일계 러시아인이었다. 피아니스트이자 빈에서 공부를 한 폴라드계 독일인 아버지와 그의 학생이었던 러시아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어려서는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배웠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 외에는 정식 음악교육을 받지 않았고 독학으로 공부했다는 점이 특이한 점이다.

그의 자서전에서 그는 십대가 되자 스케일도 제대로 배우지 않고 쇼팽부터 독학으로 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15세에는 몇 년 동안 오페라단 반주를 했고, 22세에 모스크바 음악대학에 들어가기 까지 리히터는 이미 음악적으로 완성되어 있었다. 에밀 길레스의 스승이기도 한 그의 스승 ‘네이가우스’가 그의 연주를 듣고, 즉석에서 제자로 맞아들이게 되어 대학 입학이 가능해진다. 리히터는 ‘나에게는 스승이 세 명있었는데, 나의 아버지, 네이가우스, 그리고 바그너’라고 했다고 한다.

그의 인생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화의 제목은 The Enigma (수수께끼같은 인물).

그가 82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피아니스트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소문만 무성했다. 은둔하는 그의 성격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글렌 굴드, 다비드 오이스라흐’와 같은 연주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프랑스 감독, 부뤼노 몽생종이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요청을 했고, 가까스로 허락을 받아 리히터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부터 영화를 위한 인터뷰가 시작이 되었다. 리히터는 감독에게 그가 50세부터 적기 시작한 음악노트를 전달해 주는데, 그 안에는 그 스스로의 연주회 등 그가 다닌 연주회에 대한 기록과 간단한 감상, 그만을 위한 노트가 있는데, 여기에는 유명한 음악인들에 대한 그의 느낌, 작품과 음악회에 대한 평 등이 적혀있다. 이에 전기작가가 아니지만 몽생종 감독은 리히터의 부탁에 따라 영화 뿐 아니라 책까지 만들었고, 책에 수록된 그의 노트를 보면 실제로 그가 피아노 음악 뿐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음악, 연주, 작곡에 큰 관심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악가에 대한 언급도 흥미롭다. 당대의 유명한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반 클라이번, 카라얀 등 셀 수 없는 음악가들에 대한 이야기 또한 귀를 쫑긋세우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참으로 엄청난 자료들이 아닐 수 없다.

감사합니다, 리히터 선생님!

영화 1,2편.

The Enigma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에 대한 2개의 생각

  1. 올리신 리히터 연주 슈베르트 소나타 정말 좋아요! 순간 순간 가슴이 저릿저릿했어요. 영화는 나중에 시간 내서 볼게요. 리히터가 쓴 책 제목이 뭐예요? 한번 읽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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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brahms님에게 덧글 달기 응답 취소